*2월 2일에 써둔 글이다.
글의 제목은 에티카 5부의 마지막 문장이다.
드물게 발견되는 것은 찾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만약 구원이 눈 앞에 있고 큰 노력 없이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 거의 모든 사람이 무시할 수 있겠는가? 모든 고귀한 것들은 드문 만큼 어렵기도 하다.
-> 내가 원하는 구원이 눈 앞에 보이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잘 알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자책하는 습관 =마음 깊은 곳보다 한 층 얕은 곳에서 나 자신을 마구 채찍질하기=으로 쉽게 찾지 못하는 나를 비난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구원에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다. 완벽주의자처럼 행동하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살지 않으면서도 마음으로만 부단히 나를 학대했다. (생략) 운명 탓으로 돌리면 나 또한 앞으로 살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므로 내가 찾은 타당한 이유는 [자기객관화의 부재, 성찰의 부재, 본인보다 더 나은 삶을 시기하고 따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부재] 등이었다. 건강한 성찰이 불건강한 자기학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연유는 앞으로 내가 더 탐구해야 할 과제다. 아무튼 나는 지금까지의 내 방식이 잘못되었음과 잘못은 시정할 수 있음을 제대로 자각하는 중이다. 나는 해낼 수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고귀한 존재로 여기고 앞으로 더욱 사랑해야 한다.
무지한 자는 외부 원인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소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 신에 대해 그리고 사물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현명한 자는 마음의 괴로움이 거의 없고, 영원한 필연성에 의해 자신과 신 그리고 사물을 의삭하며 결코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고 항상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아간다.
-> 나는 평화로운 마음이 들 때마다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못난 사람인지 다양한 이유를 계속 생각했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나아졌는지도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나아졌는지 생각한 것은 자기효능감을 위해서도 나를 사랑하기 위한 방법도 아니었다. 자살 빼고는 답이 없다는 생각에 이를 때까지 몰아붙이고 다음 날 학교는 가야 하니까, 진급은 해야 하니까, 이대로 죽으면 억울하니까, 살아야 할 이유도 외부에서 찾았다. 나는 오늘 폭식을 해서 죽어 마땅한데 그래도 몇달 전의 나보다는 덜 뚱뚱해 보이니까 살아도 되겠다. (생략) 등등의 생각을 했다.
다방면에서 나보다 잘난 사람이 부럽다. 오늘 정말 끝내주게 즐거운 하루를 보냈어도 하루의 끝에선 나보다 나은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찾아내고, 평화롭게 잠들지 않기 위한 방법을 강구했다. 아무래도 신체를 쓰는 쪽보다는 머리를 쓰는 쪽이 유능하고 뇌 쓰는 일로 교과서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싶은 그러니까 현명하고 싶은 욕구는 분명한데, 나는 정말로 무지했다.
괴로움이 원동력이 아니다.
괴로움을 겪고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까지 버텨온 내가 대견하다.
괴로움과 함께하면서 내가 강해진 것은 맞지만
내가 더 잘 살기 위해서 괴로움이 필수 요소는 아니다.
괴로움은 외부와 내부로 나눌 수 있다.
외부에서 온 괴로움은 어쩔 수 없지만 거기에서 파생되는 내부적인 괴로움은 줄일 수 있다.
내가 강해진 것은 외부에서 온 괴로움과 자기보존을 병행하면서 형성한 다양한 나의 특성들이다.
강해졌다고만 표현할 수 없다. 부정적인 성향, 남을 탓하는 마음, 열등감, 자격지심 등도 함께 해왔다.
나는 나의 잘못된 습관을 버리고도 더욱 유능해질 수 있다.
나는 나의 자책하는 습관을 버리고도 (생략) 수 있다.
내 인생은 글러먹지 않았다.
위의 세 문장은 내가 남들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다. 나 스스로 말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런 말을 쉽게 듣기는 어려우므로 나는 초년이 박복하고 말년에 성공한다는 말을 해주는 사주에 큰 돈을 써왔다.
하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 말해줄 것이다.
모든 고귀한 것들 안에 내가 살아 숨쉰다는 것을 기억하자.
고귀함을 만지고 듣고 맛보는 것은 나의 신체와 정신이다.
'스피노자-에티카(2021 08~)'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거를 생각하면 후회되고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니까 (2) | 2022.06.12 |
---|---|
反求諸己, 自暴自棄 , 박하사탕 (1) | 2022.02.15 |
살아간다는 것과 죽어가는 것을 기다리기 : 스피노자의 狙擊과 나의 家出 (0) | 2022.01.28 |
샐러드와 에티카(2021년의 3분의 2를 어찌어찌 보낸 후의 일상글) (2) | 2021.09.07 |
초심이라는 상투적인 단어만 떠오르는데-제목에 오랜 시간을 쏟기는 싫으므로-일단 써보기! (5) | 2021.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