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일에 써둔 글이다.
*反求諸己반구저기
*自暴自棄자포자기
맹자 이루편을 읽다가 마음에 남은 구절이 있어서 공유한다. 유명한 구절(ex자포자기)이라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밑의 해석은 의역이 아니라, 한자 하나하나를 그대로 직접 해석한 것이다. 크게 의역이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서 이렇게 남겨둔다. 발해석 미리 죄송..
孟子曰 愛人不親 反其仁 治人不治 反其智 禮人不答 反其敬
맹자 왈, 남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인을 돌아보고, 남을 다스리되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의 지혜로움을 돌아보고, 남을 예하는 데 (남이) 답하지 않으면 자신의 공경을 돌아보라, 했다.
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 其身正而天下歸之
행함에 얻지 못함이 있으면 다 돌이켜 자신에게서 찾아야 하며, 자기 몸이 올바르면 천하가 그에 돌아오는 것이다.
너무 교과서적인 말에 반감이 들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한 반감마저 한 획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고전은 의미가 있다.
선현이 미리 대신 써준 일기장이 아닐까.
孟子曰 自暴者 不可與有言也 自棄者 不可與有爲也 言非禮義 謂之自暴也 吾身不能居仁由義 謂之自棄也
맹자 왈, 자신을 해치는 자는 가히 더불어 말을 두지 못하고, 스스로 버리는 자는 가히 더불어 함을 두지 못한다. 말했다 하면 예와 의를 비방하니 이를 일러 자포라 하고 내 몸이 능히 인에 거하고 의로 말미암지 못하는 것을 일러 자기라고 한다고 했다.
성찰은 나의 원동력이었고 원동력이고 원동력일 것이다. 분명하다. 그리고 나만의 성찰 방식에서 자기파괴적인 부분들을 쳐내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남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은 경우에도, 남이 다스려지지 않는 경우에도, 예로 대하는데 답이 없어도 모두 나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으라는 말은 남탓하지 말라는 가벼운 문장으로 번역될 수도 있고, 다 나 때문이라는 말로 연결될 수도 있다. 자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잘 해야 함은 스피노자든 맹자든 동의할 것이다. 나는 저 당연한 격언과 자기파괴적 자책하기를 동일시했다. 그리고 그것을 분리해야 하며, 기존의 생각을 이어가는 것은 더이상 이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깨달음은 카운터에 쌓여 있는 박하맛 사탕. 조금이라도 매운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는 언제 구매한지 모를 불량스러운 박하사탕에게 늘 배웅을 받았다. 지독한 매움에 마비된 혀에게 강렬한 상쾌함을 준다. 하지만 매움이 완벽히 가시지 않는다. 영원하지 않다.
***에서 몇 개의 박하사탕을 먹었지만 상쾌함은 영원하지 않다. 나는 상쾌함을 지속하기 위해서 계속 단련해야 한다.
한 때에는 밑동처럼 듬직하게 느껴진 나의 말뚝에제 작별인사를 고하고 더 넓고 쾌적한 상쾌함을 누리기 위해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변화는 쉽지 않다. 구원은 고귀하며 드물다. 알고 있으니까 심히 절망할 것 없다.
반구저기와 자포자기를 구분해야 한다.
자포자기를 의역한다면 자책이 자포자기와 일맥상통하지는 않지만, 정말 말그대로 자책은 나를 暴하는 행위이다.
나는 나를 지키고 타인도 지키고 세상도 지키고 싶다.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나의 몽상은 다소 현실성이 떨어질지라도, 나를 숨쉬게 한다.
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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