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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속의 검은 잎/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도전의 동전

 
오늘은 한의사 국가고시 D-100
당연히 공부 시작 안 함 ! 밀림에서 치타에게 쫓길 때 최대 효율이 나오는 내 자신을 알고 있음.
이번주 일요일 글쓰기 과제를 후다닥 마무리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할 일 3개를 미루고 일단 뭐라도 써봅니다. ^^..


진짜 꾸준하게 듣는 믹셋 몇 없는데.. 2022부터 믿고 듣는 Pablo bozzi.
댓글 구경하는 것도 재밌는데, 마무리는 내 마음에 쏙 든 댓글로 !

Pure freedom, energy, energy, energy, energy.
순수한 자유와 힘. 음악으로 이 형이상학적 이데아를 전달한다니 정말 멋진 일
thank you from the bottom of my heart . 진심()으로 감사. 심장 밑바닥에서 한가득 감사하는 마음을 펌핑하는 이 표현. 한글도 영어도 좋다. gem 옆의 다이아몬드까지 완벽해.... PUREST to the core, indeed까지. 
답글 단 사람보다 pablo를 일찍 알았지만 나 역시 couldnt say it better에 동의.


 
작년, 올해 초에는 온몸을 던져 무언가에 올인하는 사람이 참으로 부러웠는데..
최근 추석 연휴엔 또 이런 책을 읽어버려서 (사실 이 책의 시리즈 격인 희망 버리기 기술을 5월에 추천받았는데 이걸 먼저 읽었네) 안정감에 대한 생각이 늘었다.

온갖 불안정한 방황을 마치고 이제야 무언가에 정착한 그는 몰입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2번째 해외여행은 미칠 듯이 설레지만 51번째 해외여행은 지루하다고. 오래 지속할수록 괜찮은 가치는 바로 '태도'라고. (그렇게 따지면 모든 인류가 저마다의 방황->정착 사이클을 무한대로 도는 중인데) 아직 위장관이 책을 완벽히 소화하지 못 한 상태라 나중에 더 정리해볼 예정이고 아무튼.. 
 
 
단조로울 수 있는 이유는(=단조로운 상태를 버틸 수 있는 이유) 항상 괜찮아서 그러니까 항상성이 괜찮아서. 요즘은 항상성이 높은 안정감 있는 사람들이 새롭게 멋져 보인다. 과거에도 그들이 신기하고 부러웠지만 나랑 참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일정 부분 닮고 싶다. 훨씬 먼 과거에 '삶 참 재미 없게 사네'라고 속단했던 사람들의 장점도 뒤늦게 뒤통수를 때린다. 타인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결국 내 아량의 부족함. 치환하면 결국 사랑(애인이 아니어도)은 타이밍이라는 뻔한 클리셰가 되겠지. 
 
*여기에서 내가 어떻게 타인과 소통해왔는지 그 타임라인이 여실히 드러난다.
무관심->정보 습득->이해 불가-> 가끔 질투, 시샘, 분노(미움o) -> 서사를 이해 -> 인정은 하되 구분짓기 -> 또다른 사건 a를 통해 재구성 -> 부럽긴(미움x 장점 발견) 하지만 나랑 다르다며 2차 구분짓기 -> 또다른 사건 b를 통해 장점의 층위 구분 -> 지금의 내 결핍 layer에 맞는 장점 취득을 위한 노력 
 
6년 동안 자기소개서 컨설팅을 하면서 타인의 장점을 캐치하려고 노력했다. 모두가 쓰는 뻔한 표현으로 모범 자소서를 만드는 방식으로는 내 용돈이나 등록금을 해결할 수 없었다. 서울대 국문과에 붙었다는 사실은 이력이지만 경력은 못 됐다. 재학생도 졸업생도 아닌 내가 무형의 서비스를 떳떳하게 화폐와 교환하려면 정말 잘 해내는 일이 있어야 했다. 자본주의가 퍽 싫은 내가 돈을 요구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하게 떳떳해야 했다. 방학마다 남들 장점 비교하다보니 생각과 답변이 빨라지긴 했는데.. 안그래도 기질적으로 강했던 자격지심을 더욱 부추긴 것 같다. 특징이랍시고 뭔가를 써온 사람들의 글자들은 대개 지루했다. (쉽게 말하면 enfp가 없으면 istj의 특징도 없었을 것인데) 자음과 모음의 조합이 장점이 되려면 솔직히 그걸 어려워하는 절대다수의 타인이 전제 조건이다. 우린 크랭크업까지 다양한 씬을 버텨야 한다. 평가받기, 칭찬받기, 피드백받기, 열등한 타인 감상하기, 무시하지 않기, 이것도 폭력이라고?, 차별주의자에 대한 책 읽으면서 눈물 흘리고 또다른 누굴가를 차별하러 떠나는 여행, 전리품인 자만심 걸러내기, 도전하기, 기대하기, 실패하기, 자책하기, 비관하기, 자살 결심하기... 


도전. 크고 작은 도전들이 인드라망처럼 삶을 채운다.
누군가에겐 도전적이라고 말하고
누군가에겐 도전 정신이 없다고 말한다.
도전을 드러낸 사람에겐 가끔 응원하고, 잘 되면 인터뷰를 요청하고
도전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에겐 "뭐야 언제 그런 걸 했었어?" "겸손하네" "좀 드러내고 살아"
모든 언어는 한계롭다. 언어를 내뱉는 주변 인간들도 한계롭다. 한계로운 삶에서 극한 한계를 느끼지 않아야 살 수 있다.
살아서 뭐하냐는 허무주의에 도달하면. 제일 효율적인 삶은 태어나자마자 죽는 것이니까.
 
 
동전의 양면처럼. 도전을 살펴보자.
무언가에 미칠듯이 도전하는 삶을 온전히 감내할 수 있는가?
도전의 결과만 취하고, 그 이면은 피하고 싶다.
잔인하게도 우리는 결과를 보고 바로 직전의 직전 과정만 비엔나 소시지처럼 이어 '도전'이라고 말한다.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우리 엄마의 서울 상경과 조선 전주 이씨 조상의 번식활동은 도전이 된다.
내가 사회적으로 실패하면 그렇지 않다. 뭐라고 이름 붙일 것 없이- 잠시 강아지 모양을 했던- 구름 이상 이하도 아니다.
너무 많은 생각은 독이 된다고 한다. 무지함은 독이 된다고 한다. 독기도 갖고 순수함도 가지라고 한다. 나를 믿으면서 의심하라고 한다. 내가 어제 한 말은 필연적으로 불만족스럽다. 후회는 당연하다. 
모든 책은 비슷비슷한 말을 하는데 상하좌우로 비틀고 무지개 색을 입혀 교보문고를 채운다.
책이 서점을 채운 건지, 서점을 채우기 위해 책이 만들어지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을 사람을 만든다는 문구에 감응하다가도 , 책도 사람도 엉망진창이란 생각에 눈물이 펑펑 흐른다. 엉망진창 심은 데에 엉망진창 났다. 폭죽도 펑펑 터진다. 사회가 부여하는 일과를 적절히 만족하고, 아이크림 등 안티에이징 제품에 관심을 가지고, 누가 더 잘났고 누가 제일 평범하고 누가 제일 진취적이며 누가 제일 안정적인지 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이사이로, 비판은 피하고 칭찬은 획득해야 하는 아득한 게임, 동료나 원수의 죽음도 점점 잦아지겠지, 뼛가루마저 순위를 매길 것이냐. 공수래 공수거. 행복의 행복의 행복을 평가하는 사람이 행복한가. 얼마나 많은 거울 속으로 들어가야 정답을 찾을까. 
 
 
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찝찝한 문장이 점점 혈관을 지배할 것 같아서 무섭다..무서워.
역행자 악인론 독기 가득한 메시지도 밥맛이고
잠시 쉬어라 괜찮다 최고다 세상은 무례하고 넌 가치있다는 메시지도 밥맛이다
공자는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고 뭐라고 할지에 대해서 쓴 책이나 읽고 살고 싶다.
깨우치면 괜찮을까
고타마 싯다르타가 되면 단조롭고 안온하고 평온할까..
인생이란 원래 이런 거라며 체념해도 불쑥불쑥 차오르는 밋밋함
이상하다 분명 평지인데 왜이렇게 치밀어오를까
 


연휴엔 즉흥적으로 C를 만났다. 각자 카페에서 할 일 하고 있는데 그날 저녁에 별다른 약속이 없어서.. 우린 2년 전에 1년 동안 양재에서 같이 스피노자를 공부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 C는 전부터 원하던 사업 준비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중이었다. 난 뭐하냐는 질문에 어.. 할 말이 없었다. 2년 전에도 지금도 똑같은 학생인 걸.. (사실 c도 아직 졸업 전이긴 하다.) 여전히 진로는 고민이고. 자랑할 만한 별다른 커리어도 없네. 2인 2닭 뜯으며 별별 이야기를 다 했다. 거의 내가 질문자ㅋㅋㅋ
 
내가 이 일 잘한다는 건 어떻게 알아? -> 못하는 일이 재밌을 수 있냐.
근데 난 요가 재밌긴 함. 하지만 직업으로 삼고 싶은 느낌은 단 한 번도 없었음. 디제잉 재밌긴 함. 직업이 되면 어떨까 상상도 함. 그런데 확실히 재능도 그다지, 어려움. 전업 디제이(를 위해서 일단 거쳐야 할) 일은 나에게 100% 맞는 라이프스타일도 아니라고 생각함. 반면 글쓰기는 재밌음. 글에 대한 애정을 여러모로 드러낸 이후에 나를 '글 잘 쓰는 사람'이라고 칭하는 사람이 늘었는데 내 족적이 혐오스러운 마케팅 같아서 가끔 복잡함. 숨쉬는 행동 다음으로 자연스러운 행위이기도 함. 근데 보상심리가 강함. 가끔 자기소개서 컨설팅을 하다가 내 능력에 부합하는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엔 멘탈 관리가 어려움. 자존심이 송두리째 뽑히는 기분임. 넉넉한 마음으로 일단 오케이가 어려움. 한의사는 재밌나? 모르겠음. 누구랑 일하는지, 어떤 환자가 오는지, 출근과 퇴근은 몇 시인지 아무것도 정해진 바가 없음. 한의사를 잘한다는 기준이 있나? 환자가 낫는 거랑 검사 결과가 좋게 나오는 거랑 시간적으로 완벽한 평행선을 그리긴 어려움. 내가 한의학으로 확실히 나은 경험이 있나? 세상에 완치는 존재하나?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병. 완전한 치료가 있는 질병. 뭘 선택하고 뭘 판매할지. 애초에 치유를 판매해도 되는가.. 생각이 복잡한 것임. 저 재수 없는 주황색 책도 생각할 시간에 뭐라도 하라는데 이런 생각 더미가 날 좀비처럼 먹어 삼켜서... 
 
 
직업 선택에서 최우선하는 가치는 뭐야? -> 사회적 임팩트.
 
 
장점 찾는 법 알려줘 -> 일단 하나. 넌 싫어하는 일을 버티는 능력이 있어. 난 한의대 가더라도 그 시험 다 못 봐.
막상 오면 하게 된다는 말은 c에게 별 가치 있는 형태소가 아니라 그냥 도로 삼켰다. 하지만 90%이상의 한의대생들이 버텨내는 것이 어떻게 장점이 되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단 한의대에 온 것부터 자부심을 가질만하다는데 대학 하나에 합격한 것으로 가진 얄팍한 자부심..자존감..자신감..그런 것들로 자기소개서 컨설팅을 진행한 내가 제일 모순적이다. 서울대 국문과에 떨어졌으면 고려대 합격이라고 날 광고했을텐데 지금보다 훨씬 소극적이었을 걸 안다.. 아 진짜 못됐고 한심하다......... 
 
장점이 꼭 직업이 되어야 해? -> 다른 층위라고 생각하는데. 기질대로 했으면 난 물리학자가 됐어야 해. 그런데 지금 xx 하는데 솔직히 기질에 안 맞아. 그래도 사회적 임팩트를 위해 xx 해야 해. 
 
내가 싫어하는 표현 있는데. 그냥. -> 오 맞다. 나도 그냥 싫어해.
원인 없는 게 어딨으랴.


업계 최고가 될 거 아니면 아예 도망치자. 내 방어기제다.
그래서 국문과를 가지 않았다. 
그래서 또 한의사가 되기 싫다. 싫다는 단어는 오묘하다. 온간 구체적인 결핍과 두려움을 도넛 하나로 빚어낸다.
도로 글쓰는 직업을 도전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6년간 미뤄둔 꿈을 찾는 여정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또 회피하는 셈이다. 난 시간과 노력의 보상심리에 꽉 묶였다. 글을 이만큼 사랑하는 내가 .. 시골에서 몇 년을 썩은 내가.. 실패..실패..할 수 있으니까..아예 도전조차 하지 않을래.. 한의대 졸업 후 모든 여정이 어떻게 만족스러우랴. 그런데 만족스러워야 할 것 같아. 불가능한 거 아는데 왜 원해? 똑같다. 살 찔 거 아는데 왜 먹어? 늦을 거 아는데 왜 꾸물거려? 아는데 왜? 아는데 왜? 인지행동치료가 왜 있겠냐고. 


 
 
 
 
그래도 저 책 읽은 덕분에 내 행동은 내가 책임진다는 의식 하나는 늘었다.
내가 선택한 행복과 고통을 모두 책임지자. 의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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